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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스카우트(축구)

레전드 국대 송종국 일대기 플레이스타일 페예노르트 은퇴후

by 퇴근중 2023. 3. 20.

2002년 송종국

레전드 국대 송종국 일대기

4강 신화를 기록했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황태자라 불리며 활약했다. 필드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2002년 월드컵에서 전 경기에 교체 없이 출장[6]했으며 대표팀의 마지막 골까지 기록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일찍이 붙박이 주전으로 발탁되어 탁월한 볼 관리, 완급조절, 강철 체력, 슈팅 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였다. 특히 당시 지네딘 지단과 함께 세계 최고 미드필더라 불린 루이스 피구를 꽁꽁 묶은 역대급 수비력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이후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간 것은 박지성, 이영표 등이였지만, 2002년 당시만 보면 가장 두드러진 선수는 단연 송종국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도 박지성, 이영표와 함께 송종국을 데려가려 했지만, 이미 다른 팀과 계약을 해버려 박지성, 이영표만 데려갔다는 뒷 얘기가 나올 정도. 2002년의 좌영표-우종국 라인은 대표팀 역사를 통틀어 최정상급 윙백 라인으로 평가받았다. 전성기가 너무 짧아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한국 축구 최전성기에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 선수이다. 물론 방송에서도 피구를 막는 장면을 사골처럼 우려먹으니 너무 식상하다는 팬도 있지만 최소한 그 기간만큼은 팀이나 선수입장에서도 역대급 임팩트였다. 또한 피구를 막은것만 부각되어서 그렇지 02-03 시즌 자체도 역대급 활약을 펼쳤다.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풀백 위치라 활약상이 잘 남지 않은 탓에 기억에서 잊혀진게 많지만, 풀백 그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플레이스타일

2002 월드컵때부터 커리어의 거의 모든 기간동안 오른쪽 윙백/풀백으로 많이 회자되지만 히딩크호 초창기에는 전력에서 이탈한 홍명보를 대신하여 스위퍼로 중용을 받는 등 온갖 포지션을 다 소화했다. 2001년 2월 히딩크호 데뷔전을 치른뒤 수비형 미드필더, 쓰리백의 스위퍼, 포백의 센터백,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세컨드 스트라이커까지 원톱 제외 필드 포지션은 거의 다 소화했고 어느 포지션을 서든 그의 주전출장은 확실 시 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기에 히딩크호 초기, 히딩크호의 황태자라는 별명도 붙었었다.
일단 외모도 곱상하고, 근육질이 아닌 호리호리한 체형에 키도 축구선수치고는 작고, 말씨도 운동선수답지 않게 온화하지만 알고보면 피지컬 능력이 무시무시한 선수였다. 2002 월드컵 전 경기에서 687분 풀타임을 뛰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체력이 특히 대단했다. 게다가 피구는 유럽 무대에서도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는데, 이런 루이스 피구를 상대로 어깨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과시했다.

 

페예노르트 송종국

2002 월드컵이 끝난 후 부산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가며 맹활약, 결국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이 400만 달러의 이적료로 영입해가게 된다. 당시 페예노르트 외에도 아스날 FC에서 영입 제안을 했으나 구단간 사인만 남겨둔 상태에서 부산 쪽이 시간을 끌어 영국 이적시장 시간을 지났다고 한다. 화가 난 송종국은 구단에서 짐을 모두 빼 집으로 와버리는 시위를 했었다고 한다. 이후 아직 이적시장이 닫히지 않은 페예노르트로 결국 이적하게 되었다고 꽁병지TV에서 송종국이 스스로 밝혔다. 최근과는 달리 그 때만 하더라도 에레디비시에는 유럽 수위의 리그로 통했고 페예노르트 또한 2001/02 UEFA컵을 우승하였고, 2002/03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한 강호였기에 주전경쟁까지 고려한다면 그리 아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도 꽁병지TV에서 그 당시 자신은 히딩크 감독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한 상태였고 누구랑 붙어도 다 이긴다는 마인드였다고 한다. 아스날에 갔어도 잘했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김병지 선수는 제 1의 주멘이 되었을 거라고 깠다. 송종국은 그당시 데뷔경기에서 도움을 기록하는등 대활약을 펼쳤다.

은퇴 후

은퇴 후 한동안 TV조선의 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안 그래도 수원 경기 많이 해 주는 채널인데 중립적이지 못하고 친 수원적 해설을 한다고 얘기가 있다.

1년 차에는 발음이 꽤 부정확하고, 말의 리듬과 높낮이가 안정되지 못하고, 긴장한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조금 횡설수설 전달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2년차에 접어든 2013년에는 해설 외에도 방송 짬밥이 많이 쌓였는지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으며 농담과 선수 사생활, 왕년 전성기 영원히 고통받는 피구.등을 언급하는 류의 완급조절도 능숙하게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킥 오프 후 20분 정도 지나고 경기 상황이 급박해지면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간다.

2013년에 TV조선에서 K리그 중계를 중단한 이후에는 MBC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김성주가 MBC와 축구 중계 캐스터 계약을 맺은 덕분에 아빠! 어디가?에 이어 김성주와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은퇴 이후로는 차차 예능 쪽으로도 활동을 넓히기 시작했다.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2, 도전 1000곡, 기분 좋은날, 라디오 스타 등에도 출연했으며, 고정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가 대박이 나자 지아 아빠로 유명해지고 국민 딸바보로 등극하며 불멸의 국가대표 시즌 2에도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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